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문단 편집) === 독자적인 장비 개발 === 전투기나 전차까지는 몰라도 심지어 자잘한 장비조차도 똑같은 걸 서로 따로 개발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일본군/무기체계]] 참조) 항공기의 경우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가 서로 작전 환경이 다르니 다른 전투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함재기]]의 경우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항공기와 요구하는 사항에 차이가 있는 만큼 따로 개발하는게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항공기라는 게 상당히 빡빡한 기준으로 만들어지는지라, 이것저것 다 하는 물건을 만들기는 미치도록 어렵다. 괜히 [[F-35]] 프로젝트가 돈 먹는 하마가 된 게 아니고, 그렇게 만들어진 F-35도 A/B/C형은 사실상 서로 다른 기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차이가 크다.] 특히 함재기에만 있는 착함 시스템이 그 예다. 이륙이나 발함이야 거의 동일하게 할 수도 있지만, 착함은 착륙과는 난이도부터 다르다.[* 항공모함이 아무리 덩치가 크고 비행갑판이 길고 넓다고 한들 지상에 있는 짧고 좁은 활주로보다 불안하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함재기의 [[랜딩 기어]]가 육상기의 랜딩 기어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단 랜딩 기어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동체 강도 역시 마찬가지. 함재기의 동체 강도가 육상기의 동체 강도보다 전체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 육상기는 발진 시에 자신의 [[추력|엔진 힘]]과 바람의 힘을 의지하면 되지만, 함재기의 경우는 항공모함에서 발함 시에 [[캐터펄트]]에 얹혀서 문자 그대로 새총에서 쏴재껴지는 돌맹이나 쇠구슬 같은 것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발사''''해버리는 원리이기 때문. 이런 원리이기 때문에 육상기를 함재기용으로 사용시 동체강도를 높이는 등의 작업 없이 그대로 함재기로 쓰면 발함 시 캐터펄트에서 순간적으로 가속되는 충격에 동체가 버티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찢어진다'''.] 이건 현대 제트기 역시 마찬가지. 현대 미 해군 항공대가 항공모함[* 단, [[와스프급]]과 [[아메리카급]]을 위시로 한 [[강습상륙함]]은 논외. 이들은 애초에 갑판 길이가 짧아서 일반적인 함재기들이 착함을 할 정도는 못 된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수직이착륙기를 많이 쓴다.]에의 착함을 제대로 못하는 신참 파일럿에게 괜히 '''"공군으로나 가라."'''고 까는 게 아니다. 이는 일본군과 싸웠던 미군도 마찬가지였으며 공군기를 함재기로 개수해서 사용한 영국 해군도 공군과 별도로 함재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하였고 미국에서 함재기를 수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육상기를 함재기로 개수한 경우 원판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그 예시로 영국이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스핏파이어]]를 개수한 [[슈퍼마린 시파이어|시파이어]]를 스핏파이어와 비교할 경우 스핏파이어 V형은 최고속력이 595km/h에 상승률이 16.5 m/s 이지만 이를 개수한 시파이어 II형은 최고속력이 550km/h에 상승률이 12.0 m/s에 그쳤다. 해당 자료 [[http://www.spitfireperformance.com/seafireIIc.pdf|Seafire IIc performance PDF]].[* 시파이어와 스핏파이어는 같은 형식이라도 엔진 출력에 따른 차이가 크므로 같거나 비슷한 엔진 출력을 가진 기체들로 비교한다.] 시파이어 II형은 날개접기도 안되고 함재기로 사용하기에 필요한 장비가 부족해서 훈련용으로만 돌려진 기체인데도 저정도 성능저하가 있었다. 그리고 제로센과 하야부사에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함재기와 육상기인만큼 어느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가령 날개접기야 후기형에서 생략되니 논외로 하더라도 제로센에는 항모에 착함하기 위한 테일후크가 그 예시다. [[http://markfelton.co.uk/wp-content/uploads/2016/06/IMG_0977.jpg|전시된 제로센]], [[http://2.bp.blogspot.com/--5W8fHV0w4E/Vn0R79p-CBI/AAAAAAAAz9o/EYo8Yt6tQZo/s640/Mitsu-A6M-zero-28.08.jpg|제로센 21형]] 그리고 해군은 경량화에 극단적으로 집착해서 최소한의 방어력도 없었던 것에 비해서 육군은 나름대로 방어수단을 갖춰서 자동방루탱크와 조종석 후방에 방탄판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Ki-43-152A.pdf|Ki-43-II PDF]]) --근데 이건 없는 게 문제인데-- 다만, 하야부사와의 교전도 제로센으로 보고되었으므로 교전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던 것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플라잉 타이거즈]]는 하야부사가 제로센과 유사하여 "Army Zero"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https://books.google.co.kr/books?id=igG1BQAAQBAJ&pg=PA200&dq=%22Army+Zero%22&hl=en&sa=X&redir_esc=y#v=onepage&q=%22Army%20Zero%22&f=false|#]]) 진짜 문제는 [[항공모함]]에서 운용이 불가능하므로 육군이나 해군이나 지상의 비행장에서만 운용이 가능한 중(中)폭격기 이상의 거대한 물건도 전부 따로따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해군에서 개발한 중형 폭격기들은 대함임무에 사용되었고 현대에서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대잠초계기같은 대형 항공기는 해군에서 운용하므로 해군에서 저런 항공기를 운용한것 자체가 육해군의 대립 때문은 아니다. 동시기 미 해군 또한 [[B-24]] 중폭격기의 해군 사양인 PB4Y-2를 초계용으로 사용했으며 냉전기 소련 해군 또한 지상기지에서 발진한 중폭격기를 대함임무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항공대를 운용하기도 했다.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russia/av-naval-equip.htm|Naval Air Force]]. 1985년에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폭격기 160대가 해군 항공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문제는 육군서 이걸 시샘해서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비슷한 폭격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 || 일본 육군 || 일본 해군 || || 경폭격기 || Ki-21 97식 폭격기, Ki-49 100식 폭격기|| G2H 95식 폭격기 || || 중형 폭격기 || [[Ki-67 히류|Ki-67 4식 폭격기]] || [[G3M]] 96식 폭격기, [[G4M]], G6M || || 중폭격기 || [[Ki-91]] || [[G5N 신잔]], G7M 타이잔,[* [[He 177]]을 참고해 설계한 폭격기다.] [[G8N 렌잔]], [[G10N 후가쿠]][* 이 기종은 기체로서 만들어진 적이 없다. 계획도는 있었고 엔진은 몇기 제작했는데 프로토 타입 기체도 만든 것이 없다. 다른 것을 따지기 전에 계획상의 크기부터가 이 시기 최대의 폭격기이던 B-29와 맞먹거나 조금 더 큰 수준이었는데 이 탓에 [[G10N 후가쿠]] 문서에 들어가서 보면 나오는 건 죄다 상상도이다.] || 다만 이는 양측의 교리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군은 함상 항공기로 교란하고 멀리 있는 육상기지에서 날아오른 항공기들이 폭격을 가한다는 아웃 레인지 교리 때문에 해군이 육군보다 폭격기를 많이 연구하고 많이 만든 까닭이다. 해군이 이런 교리를 채택한 이유는 해군 조약 하에서 주력함(특히 전함)의 숫자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그걸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항공기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아웃 레인지는 제대로 된 항공기와 인력, 그리고 정찰 및 작전수립등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나 가능한 작전인데 그 당시의 일본군 상황에서는 써먹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긴 항속거리를 얻은 대가로 전투기나 공격기, 폭격기 대부분이 종이장갑이 되었다. 그나마 해군 폭격기는 항속거리라도 길었지, 육군 폭격기는 종이장갑과 빈약한 방어화력에 항속거리도 그렇게까지 길지도 않았으니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런데 해군은 해군대로 사고를 저지르는데… 해군의 주무기여야 할 함선들은 연료를 너무 많이 먹는다면서 연료탱크를 삭감, 결과적으로 항속거리를 줄이는 이해 불가할 뻘짓을 저지르고 있었다.(나가토급 제외)[* 이건 나가토급 전함이 가진 상징성이 원인이 된 듯하다. 다른 전함들과는 달리 나가토급은 ''''나가토와 무츠는 나라의 자랑''''이라고 일본 내 일반 대중에게 관심을 많이 받기도 했으니, 당대 최신예 전함이면서 실제 건조된 전함들 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전함인 [[야마토급 전함|야마토급]]은 대외적으로 알리기가 꺼려졌을 거다. 이것 때문에 미군에서 함명만으로는 판단이 되지 않아 혼선도 있었을 정도. 야마토급의 3번함이자 역대 전투함들 중 단 한 척의 잠수함으로 격침시킨 최대 단일 함선 격침 전과이기도 한 [[시나노(항공모함)|시나노]]를 참고.] 그리고 저 해군의 중형 폭격기들도 나중에 갈수록 연료문제로 인해 항속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일단 [[G4M]] 문서로 들어가서 보면 후기로 갈수록 항속거리가 점점 늘어난다고 되어 있는데, 기체 자체로 보면 확실히 늘어난다. 그러나 그놈의 연료문제로 오히려 실질적인 항속거리는 줄고 있었다.(연료를 제대로 채울 수가 없을 정도로 일본 본토에서의 연료사정은 심각해져 갔으니 오죽하면 [[송근유]]라든지, 정어리 기름, 심지어 귤껍질 기름 같은 것들도 쓰려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어지간한 중폭격기급의 항속거리는 유지되었다. 게다가 1944년 이후 이들 해군 소속 중형 폭격기들의 임무에 또다른 병맛나는 임무가 추가된다. 운용방식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전투기라기보다는 유인유도 대함 순항미사일로 봐야 할 [[카미카제]]용 자폭무기, [[MXY-7 오카]]를 발사하는 임무였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해군의 폭격기도 항속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이건 실질적인 항속거리를 말한다. [[G4M]]의 항속거리는 초기형이 4,000km 정도며 후기형으로 갈수록 길어져서 5,000km을 넘기는 기체도 나온다.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연료문제가 심각해지니 저런 항속거리는 연료를 '''제대로 된 걸로''' 가득 채울 때나 나오는 것이지, [[송근유]]와 정어리 기름에 귤껍질 기름까지 쓰는 상황하에서는 실질적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어지간한 4발 중폭격기급의 항속거리 였지만[* 문제는 저 길디 긴 항속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희생한 게 너무 컸다는 거다.] 결과는 둘 다 자원은 자원대로 낭비하고, 몇발만 맞아도 불타는 일본기 전설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항공기용 무장의 경우에는 육해군의 차이가 거의 날 수 없는 종류라서 미군은 육군 해군 차이 없이 [[M2 브라우닝 중기관총]]과 50구경 탄약으로 통일하는 판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 육군과 해군은 50구경급 중기관총이나 20㎜급 [[기관포]] 등을 '''모조리 따로따로 개발하는''' 추태를 저질렀다. 게다가 탄약도 호환되지 않는다. 똑같은 [[아리사카]]의 6.5×50㎜와 7.7×58㎜ 총탄인데, 육군 것과 해군 것은 규격이 달라서 호환되지 않는다.[* 원인은 해군이 사용한 탄환은 .303 브리티시를 배껴서 만들었고 육군은 7.7㎜치고는 위력이 약하다고 별개의 탄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공수부대]]도 해군 공수부대와 육군 공수부대가 따로 있었다.''' 이 시기의 공수부대라는건 낙하산으로 뛰어내려 거점을 점령하는 보병부대 개념이었고, 보통은 그 육성과 운송수단 확보의 어려움으로 다른나라들도 기껏해야 2~3개 사단정도 유지하는게 한계였다.[* 독일군은 공수부대가 공군소속이었는데, 괴링이 지상전에서도 전공을 세우려고 이름만 공수사단인 지상전투부대를 마구 창설하는 바람에 규모가 십수만명까지 늘어났다. 전쟁후반으로 가면 공수훈련은 커녕 비행기가 없어 할일이 없어진 정비병이나 기지 경비병등을 전속시키는 부대가 된다.] 그걸 일본육군은 일본해군이 안 도와주고, 일본해군은 일본육군이 안도와주니 각자 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현대의 특수부대마냥 육해공해병대가 다 전문화된 특수부대를 가지는 개념은 당시에는 없었다. 물론 공통으로 개발한 물건이 없는건 아닌데 카미카제용으로 개발한 [[Ki-115 츠루기]]라는 물건이다. 그런데 저렇게 개발하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더 황당하다. 육군에서는 츠루기(剣, 검)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해군에서는 이걸 토카(藤花, 등나무 꽃)로 불렀다. 물론 자폭기만 그런건 아니고 항공기용 엔진도 같은 물건인데 이름을 다르게 붙이기도 했다. 뭐, 다른 대립에 비하면 이건 양호한 수준이기는 하다. 이것은 '''육군 소속 __군함__ [[특종선 병형|아키츠마루]]와 육군 소속 __[[잠수정]]__인 [[삼식잠항수송정]]'''이 나올 때쯤 백미를 이룬다. 일본 육군이 일본 해군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자체적인 군함과 잠수 수송선을 제작하여 실제로 배치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더 가관인건, 해군쪽에선 육군 도와주느라 자기들이 격침당한다고 주장하며 군함 만드는걸 부추겼단거다. 잠수함의 경우는 의외로 해군이 육군이 잠수함을 만드는 것에 협조했다. 문제는 해군이 육군에서 잠수함을 만드는데 협조한 이유다. 육군이 잠수함을 만든다고 자기들이 쓸 자재를 가져가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것과 별개로 육군이 의외로 잘 만들자 해군이 망신당할까봐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본다면 삼식잠항수송정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모듈식 건조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전후의 잠수함들, 심지어 [[SSN]], [[SSGN]], [[SSBN]] 같은 핵 추진 잠수함들도 같은 공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삼식잠항수송정의 건조 공법인 모듈식 건조 공법은 당시 일본 해군조차 쓰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 해군이 육군의 삼식잠항수송정의 건조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서 운용병에 대한 훈련까지 시켜준 것이 이것 때문이란 말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조차도 육군과 동경대의 [[니고연구]]와 해군과 교토대의 F연구로 각각 진행되다가 기초연구도 끝나지 않은 상태로 종전크리를 먹었다. 우라늄의 주요 산지인 한반도에서 전권을 행사하던 육군과 결탁한 동경대는 우라늄을 마음껏 확보 할수 있었으나 핵분열 연구에서는 교토대에 많이 뒤지고 있었고 정작 핵분열 연구의 선두주자로 전후 4년만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는 교토대에서는 우라늄 부족으로 대규모 실험에 어려움을 겪고 이론 연구밖에 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육군 VS 해군 싸움도 부족해서 동경대 VS 교토대까지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